
중앙은행 준비자산에서 금 비중(27%)이 미국채(22%)를 29년 만에 추월했지만, 이 역전의 대부분은 미국채 매도가 아니라 금값 재평가가 만든 가격착시다. 시가평가상 재평가 자체는 실재하나, ‘재평가에 따른 비중 상승’을 ‘달러에서 금으로의 구조적 이동’으로 읽는 것이 바로 착시다. 같은 해 순매입은 외려 21% 줄었고 달러 비중은 56.77%로 버텼다. 이 구도에서 한국은행의 금 ETF 전환은 4배 비싸진 값에 평가손만 떠안고 결제·보관 면역이라는 실물의 전략 효익은 포기하는 — 적어도 실물 직접 매입과 비교하면 가장 나쁜 카드다.
핵심 요약
– 금 비중 7%포인트 급등은 미국채 매도의 결과가 아니다. 같은 해 순매입은 외려 21% 줄어든 863톤이었고, 비중을 밀어올린 지배적 동인은 전년 대비 23% 오른 금값이다 — 시가평가상 재평가는 실재하나, 그 비중 상승은 구조적 흐름이라기보다 ‘가격 베타’의 성격이 강하다.
– 잔액·흐름 지표는 ‘탈달러 가속’ 서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달러 비중은 56.77%로 유지됐고, 공식기관은 2025년 12월 미국채를 121억달러 순매수했다. 단월·단분기 지표라는 한계는 있으나, 적어도 달러 자산을 던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 시장이 보는 ‘구조적 전환’의 상당 부분은 잔액 변화가 아니라 설문 기대다. 응답기관의 73%가 5년 내 달러 축소를 전망했을 뿐, 이미 줄어든 잔액은 확인되지 않는다.
– 가격이 벌려놓은 비중 격차는 후발국에 고점 매수 함정을 깐다. 금값은 이미 5,608달러에서 4,222달러로 25% 가까이 조정 중인데 폴란드는 700톤 목표로 추격에 나섰다.
– 한국은행의 ETF 전환은 명분과 수단이 어긋난 선택이다. 2013년 차손 트리거였던 평가손은 그대로 안으면서, 결제 면역·보관 분산이라는 실물 금의 전략 효익은 0이다 — 무행동(1.1% 고착)에도 비용은 있으나, ‘지정학’을 명분으로 들면서 ‘종이 금’을 택하는 불일치가 핵심 약점이다.
– 비중 27% 근접에는 현 금 평가액의 약 25배에 이르는 추가 매입이 필요해 국회 동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ETF는 ‘제스처 다양화’에 그칠 공산이 크다.
– 진짜 검증선은 금값 차트가 아니라 잔액·흐름이다. 달러 비중 55% 하향과 순매입 1,000톤 재가속이 동시에 켜져야 비로소 ‘구조적 탈달러’가 입증된다.
1장. 29년 만의 역전을 만든 건 미국채 매도가 아니라 금값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역전은 중앙은행이 미국채를 던지고 금으로 갈아탄 사건이 아니다. 비중이라는 분수에서 실제로 크게 움직인 것은 보유 물량(분자의 톤수)이 아니라 가격이었다.
헤드라인은 선명하다. 2025년 말 세계 중앙은행 준비자산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미국채의 22%를 사상 처음 앞질렀다. 1996년 이후 29년 만의 역전이다. 금 비중은 1년 전 20%에서 7%포인트 뛰었고, 같은 기간 미국채 비중은 25%에서 22%로 3%포인트 내려앉았다. 표면만 보면 ‘7%포인트 올리고 3%포인트 내린’ 교과서적 자산 교체로 읽힌다.
그런데 같은 해 물량 데이터가 정반대를 가리킨다. 2025년 세계 중앙은행의 순금 매입은 863톤으로, 1,000톤을 3년 연속 넘겼던 2022~2024년 대비 21% 줄었다. 매입 ‘속도’는 분명히 둔화됐다. 그런데도 비중은 7%포인트 뛰었다. 물량 증가분이 줄었는데 비중이 급등했다면, 비중을 밀어올린 지배적 동인은 매입이 아니라 평가, 즉 가격이다.
가격은 그 빈자리를 메우고도 남았다. 금 현물가는 2026년 1월 트로이온스당 5,608달러로 사상최고치를 찍은 뒤 조정에 들어갔고, 2026년 6월 12일 기준 4,222달러로 그래도 전년 대비 23% 높은 수준이다. 비중은 결국 ‘보유 톤수 × 금값 ÷ 총 준비자산’이라는 분수다. 톤수가 거의 제자리(순매입 둔화)인데 금값이 두 자릿수로 뛰면, 달러로 환산한 금의 평가액이 부풀고 비중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미국채를 한 주도 팔지 않아도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서 이 글에 대한 가장 강한 반론을 정면으로 세워보자. 반론은 셋이다. ① 준비자산은 시가평가가 원칙이므로 금값 재평가는 회계적 ‘착시’가 아니라 대차대조표에 실재하는 비중 이동이다. ② 863톤은 2010~2021년 연평균 473톤의 1.8배에 이르는 역대 4위의 구조적 고수위이지, ‘둔화’로 깎아내릴 숫자가 아니다. ③ 게다가 그 매입 자체가 금값을 끌어올린 내생 변수이므로, ‘가격’과 ‘흐름’을 깔끔히 분리하는 이분법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세 반론 모두 부분적으로 옳고, 그래서 더 정확히 답할 가치가 있다. ①은 인정한다. 재평가는 가짜가 아니다. 금의 달러 평가액은 실제로 불었고 대차대조표는 명목상 강해졌다. 그러나 이 글이 말하는 ‘착시’는 재평가가 허구라는 뜻이 아니다. ‘재평가로 비중이 올랐다’는 사실을 ‘달러를 팔아 금으로 갈아탔다’는 자산 재배분으로 읽는 그 해석이 착시다. 가격이 올린 비중은 재배분이 아니다. ②도 인정한다. 863톤은 역사 평균의 1.8배가 맞고, 중앙은행 수요가 구조적으로 높다는 진단 자체는 옳다. 다만 그 863톤은 전년 대비 21% 줄어든 값이라, 톤수의 증가만으로는 한 해 7%포인트의 비중 점프를 설명할 수 없다 — 산술이 그 격차의 대부분을 가격으로 돌린다. ③의 내생성도 받아들인다. 중앙은행 매수가 금값을 끌어올린 한 축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매수가 가격을 통해 비중을 밀어올렸다 해도, 비중을 들어올린 마지막 지렛대는 여전히 가격이며, 그 지렛대가 진짜 구조 변화인지는 톤수와 잔액으로만 가려진다. 이것이 5장에서 제시하는 검증선의 존재 이유다.
그래서 핵심 함의는 이렇게 다듬어진다. 27%라는 숫자의 성격은 ‘구조적 흐름’이라기보다 ‘가격 베타’에 가깝다. 비중이 금값에 동조해 올라갔다면, 금값이 조정될 때 비중도 같은 논리로 일부 되돌림될 수 있다. 2026년 들어 금값이 고점에서 이미 25% 가까이 빠진 점을 감안하면, 다음 분기 통계에서 금 비중이 도로 내려앉아 ’29년 만의 역전’이 단기 해프닝으로 좁혀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헤드라인을 분해하면, 분자(금값)가 크게 출렁였을 뿐 분모(달러·미국채 잔액)는 거의 그대로였다는 것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2장. 달러는 줄지 않았다 — 잔액·흐름이 ‘탈달러 가속’을 반박한다
가격착시라는 1장의 진단이 옳다면, 실제 달러 잔액은 거의 줄지 않았어야 한다. 그리고 잔액·흐름 지표는 그 무변화를 가리킨다.
공식 외환보유액 통화구성(COFER) 통계에서 2025년 4분기 달러 비중은 배분 외환보유액 기준 56.77%다. 탈달러가 ‘가속’됐다는 서사와 달리, 달러는 여전히 배분 외환보유액의 과반을 훌쩍 넘긴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서는 둘이다. 첫째, COFER는 2025년 3분기부터 ‘미배분’ 항목을 폐지하고 전체를 100% 배분하는 방식으로 집계를 바꿔, 과거 시계열과의 단순 비교에는 통계 불연속이 끼어 있다. 그래도 달러 비중이 55%를 깨고 내려갔다는 신호는 없다.
둘째 단서는 더 본질적이고, 이 글에 대한 정당한 반론이기도 하다. COFER는 ‘금을 뺀 외환보유액’의 통화 구성이다. 따라서 ‘달러 56.77%’의 분모와 ‘금 27%’의 분모(금을 포함한 총준비자산)는 서로 다르다. 같은 분모, 즉 총준비자산으로 보면 금 쪽으로 비중이 옮겨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달러는 안 줄었다’는 명제는 흔들리는가. 아니다 — 오히려 그 분모 차이가 가격착시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다. 탈달러의 진짜 의미는 ‘달러 자산을 판다’는 것인데, 통화 구성(달러 56.77% 유지)도 그 매도를 보여주지 않고, 흐름도 보여주지 않는다. 금이 총준비자산에서 차지하는 몫이 커진 것은 분자인 금 평가액이 부풀었기 때문이지, 분모의 달러 잔액이 깎였기 때문이 아니다. 통화 구성은 그대로인데 총준비자산 대비 금 비중만 오른 그림 — 그것이 바로 가격이 만든 재평가의 외형이다.
흐름(flow) 지표도 같은 결을 가리킨다. 2025년 12월 외국 공식기관의 미국채는 121억달러 순유입이었다. 중앙은행들이 금을 사들이는 동안에도 달러 자산을, 그것도 미국채를 순매수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만 여기엔 한계를 분명히 달아야 한다. 단월 TIC는 변동이 큰 노이즈성 지표이고, 한 달 순유입이 추세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은 12월 +121억달러를 ‘달러 유입 추세’의 증거가 아니라 ‘달러 투매가 아직 켜지지 않았다’는 부재의 증거로만 쓴다. ‘금 매입 = 미국채 투매’라는 등식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잔액·흐름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조적 탈달러’라는 시장 컨센서스의 근거는 무엇인가. 상당 부분은 잔액이 아니라 기대다. 73개국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한 설문(역대 최다 응답)에서 응답기관의 73%가 향후 5년 내 자국 준비자산의 달러 비중이 ‘상당 또는 중간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고, 95%는 글로벌 금 보유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이 기대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 미국의 재정 부담과 국채 공급 확대가 장기적으로 달러 자산의 실질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 바닥에 깔려 있고, 그것이 금 수요의 구조적 동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5년 내 줄일 생각’이라는 설문 응답과 ‘이미 줄었다’는 잔액 변화는 전혀 다른 층위의 정보다. 방향성의 쏠림은 분명하되, 그 방향이 잔액으로 실현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이 괴리가 만들어내는 2차 함의는 시장 포지셔닝과 직결된다. 시장이 ‘탈달러 가속’을 이미 가격에 반영하려 한다면, 그 전제는 공식기관의 미국채 투매와 그에 따른 금리 급등이다. 그러나 잔액(달러 56.77%)과 흐름(미국채 순유입)은 그런 매도 트리거가 아직 발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기대가 앞서고 잔액이 따라오지 않는 국면에서는, 미국채 금리 급등에 베팅하는 쪽이 오히려 캐리를 흘리며 시간에 질 수 있다.
3장. 가격이 벌려놓은 격차는 후발국에 고점 매수 함정을 깐다
비중 격차가 매도가 아니라 가격으로 벌어졌다는 사실은, 뒤늦게 따라 사는 중앙은행에게 가장 고약한 함정을 만든다. 가격이 만든 격차를 메우려면 결국 그 비싼 가격에 사야 하기 때문이다.
순서를 보자. 금값이 먼저 뛰어 금 비중이 원래 높던 선발 보유국의 비중이 자동으로 부풀고, 그 결과 ‘세계 평균 27%’라는 새 기준선이 만들어진다. 비중이 낮은 후발국은 이 평균과의 거리를 보고 ‘우리는 너무 적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 평균 자체가 가격 상승으로 부풀려진 숫자이므로, 거리를 좁히려는 추격은 본질적으로 고점 매수에 가깝다.
폴란드가 이 패턴의 교본이다. 폴란드 국립은행(NBP)은 2025년에만 102톤을 사들여 보유량을 550톤(준비자산의 28.2%)까지 끌어올렸고, 2026년 1월 이사회 결의로 150톤을 더 사 700톤을 채우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했다. 문제는 매수 시점이다. 금값은 이미 1월 고점 5,608달러에서 6월 4,222달러로 25% 가까이 빠진 조정 국면에 들어와 있다. 비중을 좇아 사는 후발국일수록 매입 단가는 높고, 시가평가(마크투마켓) 손실에는 가장 취약하다.
이 지점에서 2차·3차 효과가 갈라져 나온다. 첫째, 비중 추격은 그 자체로 가격을 떠받치는 자기강화 고리를 만든다. 후발국 매수가 금값 조정을 완충하면 선발국 비중도 덜 빠지고, ‘평균 27%’가 더 오래 유지되며, 다시 다음 후발국의 추격을 부른다. 둘째, 그러나 이 고리는 가격이 빠지기 시작하면 정확히 역방향으로 작동한다. 평가손이 현실화되면 후발국의 추가 매수 의지가 꺾이고, 완충이 사라진 금값은 더 빠르게 되돌림되며, 비중도 함께 내려앉는다. 셋째, 그 평가손은 단순한 회계 항목이 아니라 정치 항목이다. 중앙은행의 금 평가손은 곧바로 ‘비싼 금을 고점에 샀다’는 책임론으로 번지고, 매수는 동결된다.
바로 이 마지막 고리를 한국은행은 이미 한 번 겪었다. 2011~2013년 3년간 90톤을 사들인 직후 금값이 빠지자 차손 논란이 정치 쟁점이 됐고, 이후 13년간 실물 금 추가 매입이 전면 중단됐다. 가격이 만든 비중 격차를 비싼 값에 좇다가 평가손 → 정치 반발 → 동결로 이어지는 경로는, 한국에게 가설이 아니라 학습된 기억이다.
4장. 한국은행의 금 ETF 전환은 ‘최악의 수’다
컨센서스는 이렇게 정리된다 — 한국은행도 늦었지만 ETF로라도 금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 글의 판단은 다르다. 무행동(1.1% 고착)에도 비용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ETF 전환은 실물 금이 주는 전략 효익은 하나도 얻지 못한 채 2013년에 데였던 평가손 리스크만 고스란히 떠안는다 — 적어도 실물 직접 매입과 비교하면 가장 나쁜 카드다.
먼저 출발점의 괴리를 보자. 2026년 3월 말 한국은행 금 보유량은 104.45톤, 평가액 47.9억달러로, 외환보유액 4,236.6억달러의 1.1%에 그친다. 외환보유액 규모는 세계 12위인데 금 보유 순위는 41위로, 두 위상이 약 29계단(30계단 가까이) 벌어져 있다.
이 괴리를 ETF로 메울 수 있는가. 산술이 가로막는다. 금 비중을 세계 평균 27%에 근접시키려면 현재 47.9억달러의 약 25배에 이르는 추가 매입이 필요하다. 외환보유액의 의미 있는 재편에 해당하는 이 규모는 국회 동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ETF 편입은 비중 열위를 해소하는 ‘전략’이 아니라, 포트폴리오에 금이라는 이름을 끼워 넣는 ‘제스처 다양화’에 그칠 공산이 크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ETF가 실물의 핵심 효익을 통째로 버린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이 실물 금을 보유하는 이유는 수익률이 아니라 면역이다. 실물 금은 특정 통화·결제 시스템 밖에 존재하므로 제재나 결제망 차단에 영향받지 않고, 보관지를 분산하면 단일 보관처의 지정학적 리스크에서도 벗어난다. 종이 금(ETF)은 이 둘을 모두 포기한다. ETF는 금융기관의 신용·결제 시스템 위에 얹힌 청구권이어서 결제 면역이 없고, 보관 분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금값 변동에 대한 익스포저, 곧 평가손익뿐이다.
여기서 ETF를 옹호하는 가장 정교한 반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ETF는 종착점이 아니라 실물 전환 전의 과도기·유동성 수단’이라는 단계론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은행 실물 104.45톤은 이미 전량 런던 영란은행(BoE)에 보관돼 보관지 분산이라는 면역을 안 쓰고 있으니 ETF의 한계 손실은 과장됐다’는 지적이다. 둘 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두 반론은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 ETF가 과도기 수단이라면 그것이 종착점으로 굳어질 위험을 함께 봐야 하는데, 2013년 평가손 → 정치 반발 → 동결의 경로를 한 번 걸어본 조직에서 첫 ETF 평가손은 ‘과도기’를 ‘종착점’으로 굳히는 트리거가 되기 쉽다. 그리고 104.45톤이 전량 런던에 묶여 있다는 사실은 ETF로 갈 이유가 아니라, 실물 보관을 분산해 고쳐야 할 결함이다 — 면역을 이미 안 쓰고 있으니 종이로 가자는 것은, 안 쓰던 무기를 아예 버리자는 논리에 가깝다.
러시아의 외화자산 약 3,000억달러가 한순간에 동결된 사례 이후 보관지 리스크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다. 신현송 총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지정학 리스크와 자산 간 상관관계 변화를 들어 금 ETF 등으로 투자수단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명분은 ‘지정학’인데 수단은 ‘종이 금’이라는 불일치가 이 결정의 핵심 약점이다. 평가손이라는 2013년식 정치 트리거는 그대로 안고, 동결 면역·보관 분산이라는 실물의 전략 효익은 0인 — 전략 열위 미해소와 신규 차손 노출이 겹치는 구조다. 무행동이 저비중을 고착시킨다면, 그 답은 명분과 수단이 일치하는 실물의 (보관 분산을 포함한) 직접 매입이지, 명분만 빌린 종이 금이 아니다.
5장. 이 테제를 깨려면 금값이 아니라 잔액·흐름을 보라
좋은 주장은 스스로 틀릴 조건을 명시한다. ‘역전은 가격착시’라는 이 글의 테제는 가격 차트로 검증되지 않는다. 가격은 테제의 원인이지 반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검증선은 가격과 무관한 잔액·흐름 지표에 있다.
세 가지 임계선을 제시한다. 첫째, 달러 비중(COFER)이 55% 아래로 깨져야 한다. 56.77%가 유지되는 한 ‘구조적 탈달러’는 잔액으로 확인되지 않은 기대에 머문다. 둘째, 연간 순금 매입이 다시 1,000톤을 넘어 재가속해야 한다. 2025년 863톤(전년 대비 -21%)은 역대 4위의 고수위이긴 하나 전년보다는 둔화한 값이지, 가속의 증거는 아니다. 셋째, 글로벌 금 비중이 30%를 돌파해 자리를 지켜야 한다. 반대로 비중이 25% 아래로 되돌아가면, 그것은 가격착시 테제 쪽에 무게를 싣는 증거다.
세 조건이 동시에 충족돼야 비로소 ‘구조적 탈달러’가 입증된다. 하나라도 빠지면 — 예컨대 금 비중은 높은데 달러가 56%대에서 꿈쩍 않거나, 비중은 높은데 순매입이 800톤대에 머무는 조합 — 가격이 만든 착시라는 해석이 그대로 유지된다.
단기 흐름도 같은 틀로 읽힌다. 2026년 1분기 순매입은 243.7톤으로 전년 동기보다 3%, 전분기보다 17% 늘며 5년 분기 평균을 웃돌았다. 표면적으로는 재가속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기 200톤대는 연율로 환산해도 1,000톤 회복선에 못 미치고, 무엇보다 ‘미공개 매입’이 통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해석에 유보가 필요하다. 공식 보유 총량은 2025년 11월 기준 36,521톤으로 채굴 총량의 약 17%에 이르지만, 중국 인민은행 공식치(2,313톤, 자국 준비자산의 약 9%)가 실제 보유를 얼마나 밑도는지조차 불투명하다. 만약 이 미공개 매입이 대규모로 드러난다면, 비중 상승의 상당 부분이 가격이 아니라 흐름의 결과로 재해석될 수 있다 — 이는 이 글의 테제를 깨는 또 하나의 정당한 경로이며, 그래서 ‘가속’ 판정은 흐름의 질이 검증된 뒤로 미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 스스로의 한계도 같은 잣대로 밝혀둔다. 흐름 통계는 사실상 단일 집계기관의 분기 수치에 기대고, 잔액 판단은 단일 분기 COFER와 단월 TIC에 의존하며, 평균회귀 논거도 최근 1회의 조정과 2013년의 단일 선례에 상당 부분 기댄다. 그래서 위 세 임계선은 한 분기의 수치가 아니라 여러 분기의 누적으로만 확정돼야 한다.
요컨대 관전 포인트는 금값 차트가 아니다. ‘달러 비중 55% 하향 + 순매입 1,000톤 재가속’이 동시에 켜지는지가 핵심이며, 그 둘이 켜지지 않는 한 27% 역전은 가격이 그린 그림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시나리오
시나리오 A — 가격착시 되돌림(테제 적중) · 확률 45%
트리거: 금값이 4,000~4,500달러 박스를 하향 이탈하고, 2026년 연간 순매입이 900톤을 밑돌며, 달러 비중이 56%대를 유지하는 조합. 가격이 빠지며 비중 분자가 줄어드는 1장의 메커니즘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로다.
트립와이어: 분기 순매입 200톤 하회 · 글로벌 금/준비자산 비중 25% 하회 · 금 현물가 4,000달러 이탈 · 공식기관 미국채 순유입 지속.
시장 함의: 금값은 3,800~4,200달러 박스에 갇히고, 미국채 10년물은 금리 급등 없이 안정되며, 달러는 강보합. 한국은행 ETF 편입분에 평가손이 가시화되지만 규모가 작아 원화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다.
확률 근거: 2013년 선례가 한 축이다. 고점 이후 금값이 큰 폭으로 빠지자 한국은행 매수가 13년간 동결됐던 경험은, 비중을 끌어올린 힘이 가격 베타였을 때 그것이 평균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이 판단은 단일 국내 선례와 평균회귀 논리에 기댄 것이어서 확신의 폭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잔액 지표가 아직 반증선을 건드리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가장 손쉬운 기본 시나리오로 둔다.
시나리오 B — 구조적 탈달러 확인(반증 성립) · 확률 30%
트리거: 지정학 충격이나 추가 자산 동결로 금값이 5,000달러를 재돌파하고, 분기 순매입이 300톤을 넘으며, 중국 등 미공개 매입이 확대되는 경로. 5장에서 제시한 반증 조건이 실제로 켜지는 국면이다.
트립와이어: 달러 비중 55% 하회 · 글로벌 금 비중 30% 돌파 · 연간 순매입 1,000톤 재가속 · 미국채 3개월 연속 순유출.
시장 함의: 금값 5,500~6,000달러, 미국채 10년물 금리 50~80bp 상방, 달러지수 약세. 한국은 실물 매입 압박이 커지고 원화 변동성도 확대된다.
확률 근거: 설문 응답기관의 73%가 5년 내 달러 비중 감소를 예상했고, 2022~2024년 3년 연속 순매입 1,000톤 돌파라는 선례가 있다. 더구나 미국 재정 부담과 국채 공급 확대라는 구조적 동인이 살아 있어, 잔액이 기대를 뒤따라올 잠재력은 분명하다. 다만 현 시점 잔액 지표가 아직 반증선을 건드리지 않아 기본 시나리오보다 낮게 본다.
시나리오 C — 한국 정책 분기: 실물 전환 vs 동결 · 확률 25%
트리거: 신현송 총재 취임 후 실물 금 직접 매입으로 정책이 전환되거나, 반대로 차손 논란이 재연되며 ETF 편입마저 동결되는 양극단의 분기.
트립와이어: 한국은행 월간 금 비중이 1.5%를 초과(ETF 효과 가시화)하는지 또는 변동 0(동결)인지 · 국회 동의 절차 개시 여부 · 첫 ETF 평가손 공시.
시장 함의: 실물 전환 시 27% 근접에 현 평가액의 약 25배 규모가 필요한 만큼 한국발 금 수요가 가격과 원화에 한계적 영향을 준다. 동결 시에는 금 41위라는 전략 열위가 고착된다.
확률 근거: 2011~2013년 매수 직후 13년 동결, 그리고 1.1%라는 초저비중 자체가 강한 정책 관성을 보여준다. 적극적 실물 전환보다 현상 유지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커 셋 중 가장 낮은 확률을 둔다.
결론
29년 만의 역전이라는 헤드라인은 사실이지만, 그 원인은 헤드라인이 암시하는 것과 다르다. 금 비중 27%가 미국채 22%를 넘어선 것은 중앙은행이 미국채를 던졌기 때문이 아니라, 금값이 뛰며 같은 톤수의 평가액이 부풀었기 때문이다. 순매입은 외려 21% 줄었고(863톤), 달러 비중은 56.77%로 버텼으며, 공식기관은 12월에도 미국채를 순매수했다. 시가평가로 보면 재평가 자체는 실재하지만, 비중을 올린 것은 분자의 가격이지 분모의 매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27%는 구조적 흐름이라기보다 가격 베타의 성격이 강하고, 금값이 고점에서 25% 빠진 지금 이 역전은 단기 현상으로 좁혀질 수도 있다.
이 진단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반론은 ‘설문에서 다들 달러를 줄이겠다고 했다’는 기대다. 그러나 기대는 잔액이 아니다. 5년 내 줄이겠다는 응답(73%)과 이미 줄었다는 변화는 다른 층위이며, 후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가격착시 위에서 비싼 값을 좇아 사는 후발국은 평가손 → 정치 반발 → 동결의 고리에 들어서기 쉽고, 한국은행은 2013년에 이미 그 길을 걸었다. 무행동에도 저비중 고착이라는 비용이 따르지만, 그 위에 실물 효익을 떼어낸 ETF로 진입하는 것은 결제 면역·보관 분산은 못 얻고 평가손만 떠안는, 명분과 수단이 어긋난 선택이다. 답은 명분에 맞는 실물의 직접 매입과 보관 분산이지, 종이 금이 아니다.
구체적 콜은 셋이다. 첫째, 2026년 말까지 글로벌 금/준비자산 비중이 25%를 하회하면 ’29년 역전’은 가격착시 쪽으로 판명된다. 둘째, 달러 비중이 55%를 깨기 전까지 미국채 금리 급등형 탈달러 베팅은 과대평가일 공산이 크므로, 10년물은 매수 우위로 본다. 셋째, 한국은행 첫 ETF 평가손 공시(2026년 하반기 예상) 시 차손 논란이 재연되며 실물 전환은 더 지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주 단 하나의 지표만 본다면, 금 현물가가 4,000달러 박스 하단을 지키는지를 보라 — 이 선이 무너지는 순간이 가격착시 되돌림(시나리오 A)의 첫 신호다. 다만 구조적 판정은 결국 가격이 아니라 달러 비중(COFER)이 내린다.
출처
– [EBN — 美 국채보다 금 쌓는 중앙은행들…29년 만에 준비자산 비중 역전 (2026-02-01)](https://www.e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11307)
– [World Gold Council — Gold Demand Trends Full Year 2025: Central Banks (2026-02-04)](https://www.gold.org/goldhub/research/gold-demand-trends/gold-demand-trends-full-year-2025/central-banks)
– [World Gold Council — Gold Demand Trends Q1 2026: Central Banks (2026-04-30)](https://www.gold.org/goldhub/research/gold-demand-trends/gold-demand-trends-q1-2026/central-banks)
– [World Gold Council — Central Bank Gold Reserves Survey 2025 (2025-06-01)](https://www.gold.org/goldhub/research/central-bank-gold-reserves-survey-2025)
– [Bank of Korea — 2026년 3월말 외환보유액 (2026-04-03)](https://www.bok.or.kr/portal/bbs/B0000502/view.do?menuNo=201265&nttId=10097327)
– [KB Think — 신현송 ‘외환보유액 운용에 금 ETF 등 투자수단 다양화 검토’ (2026-04-13)](https://kbthink.com/news-list/view.html?newsId=20260413114525278)
– [IMF — COFER: Currency Composition of Official Foreign Exchange Reserves, Q4 2025 (2026-03-28)](https://data.imf.org/en/datasets/IMF.STA:COFER)
– [Poland Daily / Narodowy Bank Polski — NBP gold reserves will grow to 700 tonnes, Governor Glapiński (2026-01-20)](https://polanddaily24.com/prof-adam-glapinski-president-of-the-nbp-the-nbps-gold-reserves-will-grow-to-700-tonnes/business-innovation/66242)
– [지이코노미(G.ECONOMY) — 한국은행, 13년 만에 금 현물 ETF 외화자산 편입 (2026-01-29)](https://www.geconomy.co.kr/mobile/article.html?no=314859)
– [Trading Economics — Gold Spot Price (Commodity) (2026-06-12)](https://tradingeconomics.com/commodity/gold)
– [Yahoo Finance — Bank of Korea mulls gold purchases (2013-12-31)](https://finance.yahoo.com/news/bank-korea-mulls-gold-purchases-1011285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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