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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바의 종말: 시리아 쿠르드 자치 실험 10년의 비극적 결말

로자바의 종말: 시리아 쿠르드 자치 실험 10년의 비극적 결말

“오늘 시리아 인민이 승리했다… 복수와 증오, 분열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을 연다.”
— 시리아 과도정부 성명, 2026년 2월 3일


서문: 배신의 완성

2026년 2월 3일, 시리아 내무부 소속 군 차량 150대가 하사케(Al-Hasakah)와 카미슬리(Qamishli)로 진입했다.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휴전 합의에 따른 것이다. 10년 전 이 도시들은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민주주의 실험의 심장부였다. 여성 전사들이 ISIS와 맞서 싸웠고, 마을 주민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했으며, 쿠르드인·아랍인·기독교인이 함께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

그 꿈은 끝났다.

시리아 민주군(SDF)은 라카와 데이르에조르 전체를 양도하고, 석유·가스전과 국경 통과점의 통제권을 넘겼으며, 병사들은 개별적으로 시리아 정부군에 흡수된다. ISIS 포로 수용소의 관리권도 다마스쿠스로 이전된다. 미국이 지원한 ISIS 격퇴의 영웅들이, 미국의 중재로 과거의 적에게 무장해제되는 아이러니한 결말이다.


1장: 잊혀진 약속들 — 로자바는 어떻게 탄생했나

로자바(Rojava, 쿠르드어로 ‘서쪽’)의 역사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자 아사드 정권은 북동부 쿠르드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했다. 쿠르드 민병대 YPG(인민수호대)가 그 공백을 메웠다.

YPG의 이념적 뿌리는 터키의 쿠르드 무장단체 PKK(쿠르디스탄 노동자당)에 있다. 1999년 터키에 체포된 PKK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은 감옥에서 급진적인 사상적 전환을 겪었다. 미국의 사회생태학자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의 영향을 받아, 그는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전통적 목표를 버리고 ‘민주적 연방주의(Democratic Confederalism)’를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민주적 연방주의의 핵심 원칙:

  • 국가 없는 자치: 풀뿌리 평의회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 여성 해방: 모든 지도부에 남녀 공동대표제 의무화
  • 생태주의: 환경과 공존하는 경제 모델
  • 다민족 공존: 쿠르드·아랍·아시리아 기독교인의 연합
  • 이 이념이 시리아 땅에서 실현된 것이 로자바였다. 2014년, 북동부 시리아 자치행정부(DAANES)가 공식 출범했다. 서구 좌파 지식인들은 ‘중동의 유토피아’라 불렀고, 수백 명의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혁명에 동참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2장: 코바니,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

    2014년 9월, ISIS가 터키 국경에 인접한 쿠르드 도시 코바니(Kobanî)를 포위했다. 세계는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YPG 전사들—특히 여성 민병대 YPJ—은 ISIS의 맹공에 맞서 4개월간 버텼다. 미국은 공습을 시작했고, 2015년 1월 코바니는 해방됐다.

    코바니 전투는 ISIS에 대한 첫 번째 주요 지상 승리였다. 미국에게 YPG는 더 이상 터키가 경고하는 ‘PKK의 분신’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지상군 파트너가 됐다. 2015년 10월, 미국의 지원 아래 시리아 민주군(SDF)이 창설됐다. YPG가 핵심이었지만, 아랍 민병대와 기독교 부대를 포함해 다민족 연합의 외형을 갖췄다.

    SDF의 ISIS 격퇴 기록:

  • 2017년 10월: 라카(ISIS ‘수도’) 해방
  • 2019년 3월: 바구즈 전투로 ISIS 영토 완전 소멸
  • 누적 사망자: SDF 측 약 11,000명 (미국 측 추정)
  • 통제 영역: 시리아 전체의 약 25%
  • 대가는 컸다. SDF는 시리아에서 가장 많은 석유·가스전과 곡창지대를 확보했다. 인구 300만~400만 명이 사는 지역을 다스렸다. 하지만 이 ‘성공’이 로자바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3장: 터키의 집착, 미국의 배신

    터키에게 YPG/SDF는 존재 자체가 위협이다. 터키는 YPG를 PKK의 ‘시리아 지부’로 간주한다. PKK는 1984년부터 터키 내에서 무장투쟁을 벌여왔고, 터키·미국·EU 모두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국경 바로 너머에 PKK와 연결된 무장세력이 자치정부를 운영한다는 것은 터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미국은 줄곧 양다리를 걸쳤다. NATO 동맹국 터키의 안보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대ISIS 전쟁의 핵심 파트너인 SDF를 지원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이 균형은 불안정하게나마 유지됐다.

    첫 번째 배신: 2019년

    2019년 10월,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시리아 북부 군사작전을 사전 승인했다. 미군은 쿠르드 지역에서 철수했고, 터키군과 친터키 시리아 반군이 진격했다. SDF는 며칠 만에 라스알아인과 탈아브야드를 잃었다. 수십만 명의 쿠르드 민간인이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 마즐룸 압디(Mazloum Abdi) SDF 총사령관은 말했다: “미국이 우리 등에 칼을 꽂았다.”

    그러나 2019년의 배신은 서막에 불과했다.


    4장: 아사드의 몰락, 새로운 악몽의 시작

    2024년 12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헤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이끄는 반군 연합이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렸다. HTS의 지도자 아흐메드 알샤라(Ahmed al-Sharaa, 구 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가 시리아의 새 지도자가 됐다.

    알샤라는 과거 알카에다·알누스라 전선의 지도자였다. HTS로 재편하면서 ‘온건화’를 선언했지만, 그의 이력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무엇보다 HTS는 터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 새로운 시리아를 신속하게 인정했다. 2025년 5월, 트럼프는 사우디 방문 중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같은 달, 톰 배릭(Tom Barrack)이 터키·시리아 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됐다.

    톰 배릭의 배경:

  • 트럼프의 40년 지기 친구
  • 2017년 대통령 취임식 조직위원장
  • 2021년 UAE 로비 관련 혐의로 기소(무죄 판결)
  • 부동산·투자업계 거물
  • 배릭의 임명은 미국의 새로운 노선을 상징했다. 미국은 시리아를 ‘터키의 영향권’으로 사실상 인정했다. SDF에 대한 지원은 급격히 위축됐다.

    주요 전환점들 (2025년):

  • 2월: 시리아 국민대화회의에 SDF 대표 초청 없음
  • 3월: 터키·SNA 공세 후 SDF ‘국가기관 통합’ 합의
  • 8월: SDF가 하사케에서 연방주의 회의 개최 → 다마스쿠스 분노
  • 10월: 시리아 의회 선거에서 SDF 통제지역 제외
  • 11월: 트럼프, 시리아를 대ISIS 연합에 가입시킴 (SDF 대체)

  • 5장: 2026년 1월, 최후의 공세

    2026년 1월 4일, SDF 대표단이 다마스쿠스를 방문해 통합 협상을 재개했다. 마즐룸 압디와 함께 미군 합동특수작전사령부 지휘관 케빈 램버트(Kevin J. Lambert) 준장도 참석했다. 회의는 ‘긍정적 성과’를 냈다고 발표됐지만, 시리아 외무장관 아사드 알샤이바니(Asaad al-Shaibani)가 갑자기 회의를 종료시켰다.

    이틀 후인 1월 5~6일, 더 중요한 회담이 파리에서 열렸다. 시리아 외무장관과 정보국장이 이스라엘 대표단과 만났다. 미국의 배릭 대사가 중재했다. 시리아 측은 SDF에 대한 군사작전 계획을 설명했고, 이스라엘은 반대하지 않았다. 터키로부터는 “쿠르드 민간인만 보호하면 미국이 승인할 것”이라는 확답을 받았다.

    1월 13일, 시리아 정부군이 공세를 개시했다.

    공세는 동부 알레포 지역에서 시작해 라카, 데이르에조르, 하사케 전역으로 확대됐다. 2주간의 전투로 양측에서 각각 약 1,000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152명, 부상자 322명이었다.

    1월 18일: 알샤라 대통령이 14개 조항의 휴전안을 일방적으로 발표
    1월 20일: 마즐룸 압디가 다마스쿠스 방문했으나 협상 결렬
    1월 22일: 수정된 휴전 발효, 15일 연장
    1월 30일: 최종 합의 발표


    6장: 합의의 내용 — 로자바의 해체

    2026년 1월 30일 합의는 로자바 프로젝트의 사실상 종말을 의미한다.

    영토적 양보:

  • 라카 주 전체: 시리아 정부에 양도
  • 데이르에조르 주 전체: 시리아 정부에 양도
  • 석유·가스전 통제권: 시리아 정부로 이전
  • 국제 국경 통과점: 시리아 정부가 관리
  • 군사적 통합:

  • SDF 병사들은 개인 자격으로 시리아 군에 편입
  • 집단적 부대 유지 불가
  • 다마스쿠스의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함
  • 행정적 변화:

  • 하사케 주 민간 기관: 시리아 국가에 통합
  • 내무부 치안병력이 하사케·카미슬리에 배치
  • ISIS 포로 수용소(약 40,000명 수용): 시리아 정부가 인수
  • 남은 것:

  • SDF는 쿠르드 다수 지역(코바니, 하사케 일부)으로 후퇴
  • 마즐룸 압디는 이 지역 방어가 “레드라인”이라고 선언
  • 미국은 연방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명시
  • 아이리시 타임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SDF 격퇴는 민주주의 실험의 종말을 알린다.”


    7장: 누가 이기고 누가 졌나

    승자들:

    1. 터키
    터키는 오랜 숙원을 이뤘다. PKK와 연결된 세력이 국경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앙카라는, 미국의 축복 아래 목표를 달성했다. 향후 시리아 재건 사업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할 전망이다.

    2. 시리아 과도정부
    알샤라 정권은 영토의 25%를 순식간에 회복했다. 시리아 최대의 석유·가스전을 확보했고, ISIS 포로 관리라는 국제사회의 짐도 떠안았지만, 이는 동시에 지렛대가 된다.

    3. 이스라엘
    파리 회담에서 드러났듯, 이스라엘은 시리아 정부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 중이다. 골란고원 반환을 포함한 ‘1994년 이스라엘-요르단 평화조약’ 수준의 합의가 논의되고 있다. 시리아가 SDF를 제압하면, 이란의 ‘저항의 축’에 대한 또 다른 타격이 된다.

    4. 미국 (단기적)
    트럼프 행정부는 터키와의 관계를 복원하고, 시리아 문제에서 발을 뺐다. 대선 공약대로 ‘끝없는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주장할 수 있다.

    패자들:

    1. 쿠르드인
    1920년 세브르 조약 이후 한 세기 동안 독립국가를 꿈꿔온 쿠르드인들에게, 로자바는 그 어느 때보다 현실에 가까운 꿈이었다. 그 꿈이 무너졌다. 터키·이라크·이란에 흩어진 3,000만~4,000만 쿠르드인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타격은 측정하기 어렵다.

    2. 미국의 신뢰
    ISIS와의 전쟁에서 11,000명의 목숨을 잃은 동맹을 버렸다. 미래에 미국이 비국가 행위자와 동맹을 맺으려 할 때, 누가 믿을 것인가? 이 질문은 대만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미국의 모든 동맹에게 울려퍼진다.

    3. 민주적 연방주의라는 아이디어
    여성 해방, 생태주의, 직접민주주의—로자바가 증명하려 했던 모든 이념이 시험대에서 내려왔다. ‘대안적 근대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던 실험이 강대국 정치의 제물이 됐다.


    8장: 앞으로 무엇이 남았나

    ISIS의 부활 가능성

    SDF가 관리하던 알홀(Al-Hawl) 수용소에는 약 40,000명의 ISIS 관련자가 수용돼 있다. 여성과 아동이 대다수지만, 전투원 출신도 상당수다. 시리아 과도정부가 이들을 어떻게 관리할지는 미지수다. 수용소 관리 실패나 대규모 탈옥은 ISIS 부활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터키의 다음 행보

    터키는 시리아 북부에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터키 내 시리아 난민 400만 명을 귀환시키려 한다.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인구 이동과 인종 구성 변화가 예상된다.

    쿠르드의 저항

    마즐룸 압디는 코바니와 하사케 쿠르드 다수 지역의 방어가 “레드라인”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 없이, 그 방어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역 질서의 재편

    아사드 시절 ‘저항의 축'(이란-시리아-헤즈볼라)의 핵심이었던 시리아가 터키 영향권으로 들어갔다. 이란의 중동 전략에 큰 구멍이 뚫렸다. 이스라엘-시리아 관계 정상화가 현실화되면, 중동 지정학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결론: 역사의 교훈

    10년 전, 세계는 로자바를 주목했다. 여성들이 총을 들고 ISIS와 싸웠고, 마을 평의회가 민주주의를 실험했으며, 민족을 초월한 연대가 가능해 보였다. 수많은 좌파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21세기의 스페인 내전’이라며 연대를 외쳤다.

    그러나 강대국 정치는 이상주의에 관심이 없다. 미국에게 SDF는 ISIS를 격퇴하는 도구였고, 그 목적이 달성되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터키와의 관계, 시리아 재건의 이권, 이란 봉쇄라는 더 큰 전략적 이해 앞에서 쿠르드의 꿈은 협상 테이블에서 거래됐다.

    역사는 이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쿠르드인에게 독립을 약속했다가 철회한 것처럼, 1991년 걸프전 후 미국이 이라크 쿠르드인의 봉기를 부추겼다가 외면한 것처럼. 쿠르드인들은 말한다: “산만이 우리의 친구다.”

    로자바의 종말은 단순히 한 자치지역의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을 던진다: 국제정치에서 ‘원칙’이란 무엇인가? 동맹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강대국이 버린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

    시리아 정부군 차량이 하사케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며, 한 쿠르드 주민이 말했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그 말이 저항인지 체념인지는, 앞으로의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작성: 2026년 2월 5일
    EcoStream24 리서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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